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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화와 함께하는 마음의 휴가] 밀레를 닮은 영화 완득이
작성자 이주미 등록일 2013-07-23 조회수 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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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화와 함께하는 마음의 휴가>

 

 밀레를 닮은 영화 완득이

 

 

: 박노영(교육분과위원

 

국내 거주 외국인 150만 시대! 코리안드림으로 일자리를 찾아, 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여러 정책과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들을 보는 선주민들의 편견과 배타성, 행정적인 부분에 있어 구태의연함은 여전하다. 영화 완득이는 이런 이주민들과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완득이2008년 출간된 김려령이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연기파 흥행배우 김윤석과 성균관 스캔들 이후 해진 유아인이 주연하여 당시 500만 누적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를 기록한 대박영화였다. 장애인 댄서인 아버지와 나중에 필리핀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된 주먹질의 반항아 완득이, 그리고 오지랖 넓고 변죽 좋은 담임교사 동주를 중심으로 한 성장의 과정을 그렸다.

영화 황해 이후 살을 빼고 좀 더 편해진 모습으로 연기인지 실제 생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리얼한 연기를 보여 준 김윤석과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의 감성과 느낌을 제대로 살려낸 유아인을 중심으로 열연한 조연들의 캐릭터마저도 모두 빛났던 영화였다.

 

 

'퍽퍽한 삶, 그 안에서 웃고 있는 우리네의 카르페디엠' 

영화는 가난한 집안의 문제아 완득이와 장애인 아버지,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결코 우울하거나 비참하지 않게 조명한다. 자칫 무거운 주제로 신파조로 휘둘리거나 교훈적 내러티브로 재미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아주 유쾌하고 재밌게 그런 문제들에 돌직구를 던진다.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삶 자체도 그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퍽퍽하다.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도 웃고 즐기는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카르페디엠(Carpe diem)의 교훈을 남긴다.

마르크스와 막스베버를 인용하며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사회선생님 동주의 캐릭터는'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진짜 부끄러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동시에 던지며 영화를 무겁게도 가볍게도 만들지 않는 일종의 무게 추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고등학생 완득이의 미술수업 장면이 나온다. 수업에는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밀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삭줍기'가 등장한다. 미술선생은 완득이에게 이 그림을 보고 무엇이 느껴지냐고 묻는다.

 

 

 "뭘 봐? 그러는거 같은데요, 맨 오른쪽 저 아줌마 곁눈질로 '뭘 봐?' 일단 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온 이방인들로 보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해질 필요가 있었어요. 맨 오른쪽 아줌마 농장주인이랑 한방 붙으려고 주먹쥐기 일보직전이구요. 맨 왼쪽 저 아줌마 지금 일하는 척 하고 있는데 사실 왼쪽에 쥔 지푸라기를 던져서 상대방의 시야를 가리고 한방에 치고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아줌마는 주먹이 보통이 아닌게 안에 돌멩이를 쥐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어요, 싸움은 이기고 봐야되니까. 그리고 저 아줌마들 자기들 나라에선 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 입니다."

 

완득이의 해석에 황당해 하는 미술선생님의 표정이 가관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해석을 한 창의적인 제자에게 칭찬을 해줘야 맞을 것 같은데, 현실은 영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완득이의 그림해석은 너무나 훌륭했다. 그림도 그렇고 모든 예술은 관객이 처한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허투루 던진 말 같지만 완득이의 대사에는 자본과 권력의 구조, 신자유주의의 폐단과 황폐해진 인간성 회복문제, 이주민 문제 등이 유기적으로 버무려져 있어 밀레의 그림을 매우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수준높은 시선이 담겨있다.

 

들녁 끝편에 말타고 서성이는 지주가 보이고, 높다랗게 쌓인 짚더미는 재물과 세월의 덧없음을 나타내며 허리를 굽히고 떨어진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의 모습에선 성화와 같은 숭고미마져 느끼게 해준다는 식의 고상한 주석은 식상하다. 밀레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자연으로부터 얻는 노동의 신성함과 고단한 삶의 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구약성경에 보면 룻과 나오미라는 고부관계인 과부 둘이 보아스라는 큰 지주의 밭에서 남은 이삭을 주우며 연명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지주들은 추수하고 떨어진 곡식들을 모두 걷지 않고 고아와 과부 등 빈민들을 위해 남겨두곤 했었다. 오늘날 경제를 독식하고 있는 1%의 자본가들은 어떤까. 이젠 대기업들이 중소상인들의 영역까지 들어와 이삭은 커녕 낟알갱이 하나도 용납치 않고 싹쓸이를 한다. 밀레의 그림은 지금 시대에선 결코 태어 날 수 없는 생경한 풍경일 수 있다.

 

'괴로움 많은 세상에서 행복의 기초를 그리는 밀레, 그리고 영화 완득이...' 

 

영화에 등장한 인물 중 완득이의 아버지는 춤꾼, 소위 딴따라다.

등이 굽은채로 삐에로 분장을 하고 춤추는 완득이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와토의 ''의 모습이 지나간다. 로코코 시대 화려한 귀족들의 문화가 절정에 달한 무렵, 작가 와토는 한 광대의 분장과 우스꽝스런 의상 뒤 숨겨진 고독과 슬픔까지 담아내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 유독 유모가 있는 사람 중에 정작 자신의 슬픔을 묻어 둔 이들이 많다. 그림의 삐에로는 남에게 웃음을 주지만 본인의 표정은 우수에 차고 눈빛은 깊다. 탐욕스런 관객들은 상대적 우월감으로 광대를 비웃고 있지만 중앙의 커다란 눈망울을 한 당나귀 한마리는 탐욕과 어리석음, 권력의 단명을 관조하는 듯하다. 장애인으로 다문화가정의 가장으로 가난한 배우로 사회적 약자로서의 그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바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긍지일 수 있다. 완득이는 그런 아버지와 이국땅에서 온 어머니의 존재를 받아 들이며 한층 성장해 나간다. 까칠한 스승과 문제 반항아 제자의 멘토링이 행복하게 끝을 맺는 뻔한 설정일 수 있으나 영화는 그 과정과 결과들을 거쳐가는데 진심과 진정을 가진 소시민들을 등장시켜 아프지만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게 한다.

 

 

 

밀레는 "인상을 따라서 자연을 찾아가라. 아름다움은 가까운 곳에 있다. 목적이 고상하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다. 생활에는 많은 괴로움이 있지만 그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에 ''이라는 행복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그리려고 한다." 라고 고백했다. 자연을 찾아, 괴로움 많은 세상에서 행복의 기초를 그리려 노력했던 밀레의 그림처럼 완득이는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만든다. 우리 주위 어디에나 가까이 있는 다른 완득이에게 동주선생님 같은 존재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번 불러본다.

'얌마~ 완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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