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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정신보건법 유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6-30 조회수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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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정신보건법 유감


이 영 문 아주대학교 의료인문학 특임교수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2017년 5월 30일 시행된 후,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예견된 일이다. 전혀 준비없는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이 2016년 5월, 19대 국회 마지막 날 200여 개의 법안과 함께 무더기로 통과될 때부터 논란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상 식물국회가 된 상태에서 아무런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4명의 국회의원 발의안과 행정부 법안을 적당히 버무린 법안이 상정되었다. 또한 정신보건전문가, 가족, 당사자들의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채, 법의 구체적 내용이 밀봉된 상태로 통과되었다. 이런 이유로 개정 정신보건법은 시작 단계부터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단계로 법안이 통과된 4개월 후, 헌법재판소에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다. 정신보건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법은 통과되었는데, 이를 재수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충분히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린 후에 개정 정신보건법이 통과되었다면 그래도 혼란이 덜 할 수 있었다. 행정부는 결코 기다리지 않았다. 우매한 결정을 밀어붙인 당시의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이다. 이제는 법안의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홍보영상을 통해서는 마치 정신보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처럼 과대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공병원의 의사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의사에 의한 2차 입원 판정과 연이어 입원적합성 심사까지 해야 하는 서류작업이 불필요하게 방대해졌고, 이를 어길 시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 원에 해당되는 벌칙조항이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정신건강의학회는 법의 모순을 지적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당사자와 가족들은 필요할 때 입원이 어려워진 것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그나마 좋은 방향으로 개정된 중증정신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서비스는 선언적 의미에 그쳤고, 예산이 전혀 수반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오히려 정신장애인을 정신과 의사가 전혀 상주하지 않은 곳에 입소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정신요양원(OECD국가 중 우리나라만이 가진 정신과 입소시설)은 20년 전부터 점차 폐지논의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이번 개정안에서 허가권한이 국가단위에서 시장, 군수 단위로 내려와 기관설립이 훨씬 쉽도록 되어 있다. 지역사회 삶을 보장한다는 개정 정신보건법이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에 정신장애인을 수용하려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이다. 


정신보건법에 담긴 철학은 사회방위(social defense), 사회보장(social security), 사회통합적 (social inclusion or integration) 관점으로 대별될 수 있다. 초기의 정신보건법이 사회방위적 요소가 많았지만, 사회보장에 대한 관점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인권침해 요소와 당사자 권리강화 등이 포함된 사회통합적 시각이 여전히 이번 개정안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인권의 마지막은 사람으로서의 삶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인권자체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지역사회 내 효율적 정신질환 관리방안이 구체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개정 정신보건법은 입원절차를 통해 전문가들을 서로 감시하게 하고, 정신과 의사들의 잘못만을 지적하고 있는 악법에 그칠 것이다. 지금이라도 보건복지부는 변죽만 울리는 탁상공론을 중지하고, 정신장애인들의 인권과 지역의 삶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법의 재개정에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농공상의 직업관과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보다 행정편의적 발상이 모든 부처에 만연하다. 어떻게 2년마다 보직이 바뀌는 행정관료의 시각이 전문가들의 실질적인 의견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나?
이제라도 정신보건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법조계, 당사자,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정신보건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행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한 제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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